홍콩 여행 - 3일차 (마카오)
10시 마카오행 배를 타기 위해 호텔에서 9시 반에 나섰다. 분명 전날 잠들기 전 초행길이니 늦어도 9시 20분에는 호텔에서 나오자고 했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늘 그렇듯 예상보다 늦게 출발했다.
첫날 기내에서 난동부린 아저씨로 액땜한 덕일까. 완차이 역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타려던 Island Line 지하철은 이미 와있었고, 우리가 타자마자 출발했다. 셩완 역에 내린 후에도 친구가 미리 구매한 QR 코드로 빠르게 페리 티켓을 교환했고, 페리 탑승장에 도착한 순간 바로 탑승을 시작해 얼떨결에 1분의 대기도 없는, 아주 효율적인 이동을 할 수 있었다. 누가 보면 홍콩에 수십 번 와본 사람들로 착각하겠다.
마카오행 페리는 매우 컸고, 터미널에서 출발 직후를 제외하면 흔들림도 거의 없었다. 우리 모두 배 멀미를 하지 않았으며,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아도 배 멀미로 고생하는 것 같은 사람은 없었다. 배가 큰 만큼 캐리어를 둘 공간도 있었고, 화장실 및 간이식당도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탑승객 수 대비 화장실이 적어서 운항 도중 화장실 앞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전날 훠궈를 먹고 배탈이 난 친구는 배에서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홍콩에서 마카오까지는 약 50분 정도 걸렸다. 주변에 시끄러운 사람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에 이어폰을 가져와 참 다행이었다. 친구들은 왜 치사하게 혼자만 이어폰을 챙겨왔느냐고 뭐라 했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마카오에 도착해 입국 절차를 마친 후 베네시안 호텔에서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러 이동했다. 마카오에 있는 여러 고급 호텔들이 마카오 핵심 지역을 지나는 무료 셔틀을 제공하는데, 투숙객이 아니어도 이용 가능해 많은 관광객이 사용한다. 버스는 약 15분에서 20분마다 한 번씩 오는 것 같았는데 출발지에서는 버스가 가득 차야 이동하는 것 같았다. 무료 셔틀버스지만 우리나라 우등 관광버스에 못지않게 쾌적했고 에어컨도 잘 나와 굉장히 쾌적했다. 다만, 페리 터미널에서 나와 셔틀버스 탑승장까지 거리가 꽤 되었다. 일반 시내버스 탑승장을 지나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그래도 공짜로 버스를 태워준다는 데 이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베네시안 호텔에 내려 잠시 호텔 내부를 구경했다.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다녔다. 비싼 가게, 카페, 식당들이 있었고 카지노에는 심각한 얼굴을 한 채 딜러의 손동작을 주시하는 여러 도박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아직 낮이라 그런지 카지노는 텅 비어있는 수준에 가까웠다.
아침을 못 먹은 상태로 마카오에 넘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배를 채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우리가 찜해둔 포르투갈 식당이 있는 Taipa Food Street로 향했다. 베네시안 호텔에서 걸어서 약 20분 정도 소요되었는데, 가는 길에 에스컬레이터도 있었고, 나무들이 있는 산책로도 있어 따스한 날씨에도 걸을만했다. 앞서 등장한 배탈이 난 친구는 여기서도 가는 길에 화장실을 들렀는데, 휴지가 없어 나에게 급히 SOS를 쳤다. 내 티슈…



개인적으로 마카오에서 가장 기대한 건 포르투갈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 스페인에 살 때 포르투갈 식당에 여러 번 가봤는데, 단 한 번도 맛이 없던 적이 없었다. 가끔은 스페인 음식보다 더 맛있지 않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포르투갈 식당에 가서 친구들에게 아는 체할 생각에 매우 신이 났다.
다만, 신이 난 것에 비해 마카오 포르투갈 식당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 포르투갈 식당은 커녕 마카오에 관해 공부를 전혀 안 해왔으니 말이다. 다행히 친구가 그나마 좀 검색을 해왔고, 그 중 구글 리뷰가 좋았던 Portugalia로 향했다.
예약도 안 한 채, 구글 평점만 믿고 향한 Portugalia는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열었고, 그래서인지 텅 비어있었다. 아주 친절한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4인용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문어 샐러드, 감바스, Arroz de Marisco, 조개찜, 그리고 상그리아를 주문했다.





정말 맛있었다! 첫 번째 사진에 있는 Arroz Marisco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스페인 요리 중 Arroz Caldoso와 비슷한 음식인데, 해산물이 많이 들어간 뜨끈한 어죽 같은 요리다. 한국 사람들 입맛에 정말 잘 맞을, 호불호 없는 요리라고 생각한다. 조개찜도 정말 맛있었는데, 첫 번째 사진 오른쪽 위에 보면 조개찜을 우리가 싹싹 긁어먹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감바스는 우리가 아는 맛 그대로라 마음 놓고 시켜도 되고, 식전빵을 찍어 먹으면 아주 맛있었다. 우리는 조개찜, 감바스 모두 빵을 찍어 먹다 보니 모자라서 식전빵을 추가 주문해야만 했다. 네 번째 사진에 있는 요리는 Bacalao (바깔라오, 스페인/포르투갈어로 대구)인데, 대구구이 위에 감자와 올리브를 얹은 요리다. 직원 분이 Portugalia 대표 메뉴라고 추천해주셔서 주문했는데,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실제로 스페인에 살 때 대구 요리를 많이 먹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굳이 시켜야 할 메뉴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문어 샐러드는 상큼한 맛으로 애피타이저로 딱 맞았다.
배가 고파서였을까. 정말 게눈 감추듯 모든 음식을 먹어치웠다. 상그리아까지 마시니 다들 살짝 취기가 올라왔다. 플란, 크렘브륄레, 쌀 푸딩까지 후식으로 먹으니 정말 행복했다. 먹는 내내 나오는 요리마다 아는 척을 해서 오늘의 아는 척 할당량도 채울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잠시 앉아 휴식 시간을 보냈는데, 어떤 직원분이 와서 갑자기 너희는 왜 문어구이를 안 먹었느냐고 물어보셨다. 알고 보니 이 식당에 오는 한국인이 모두 시키는 메뉴라는데,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미슐랭 식당에서 친구들과 맛있게 한 끼를 먹을 수 있어 감사했다.
식사 후 세나도 광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또다시 무료 셔틀버스를 찾아 나섰다. 이번에는 시티 오브 드림즈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그쪽으로 향했다.
거리가 꽤 됐지만, 식사한 직후여서 소화도 시킬 겸 걸어갔다. 오랜만에 느끼는 따스한 날씨라 참 좋았다. 가는 길에 공중에서 식사하는 식당인 Dinner In The Sky도 봤는데, 저기서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수로 식기구를 떨어트리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졌다.
시티 오브 드림즈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세나도 광장까지는 제법 오래 걸렸던 느낌이다. 못 해도 20분은 간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마카오 구경도 하고, 에어컨 바람도 쐬고 나쁘지 않았다.








시티 오브 드림즈, 베네시안 호텔이 있는 곳에서 쭉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 마카오 반대편으로 넘어오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쪽이 훨씬 예쁘다고 외쳤다. 유럽을 연상시키는 자갈길과 건물들이 마카오식 건물들과 어우러져 너무 멋지게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반대쪽보다 사람이 훨씬 많긴 했지만, 친구들과 젤라또를 나눠 먹고 육포를 시식하며 걷기 딱 좋았다.
사실 처음에 마카오에 가기로 했을 때는 카지노에서 도박할 것도 아니고 뭐를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물론 베네시안 호텔이나 시티오브드림즈는 내 취향과는 별로 맞지 않았지만, 세나도 광장 쪽은 매우 예뻐서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여기서 1박을 할 걸 그랬다며 다들 아쉬워했다. 천천히 산책하며 동네 구경도 하고, 카페도 여러 번 들리고, 맛집 방문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잘 맞을 것 같은 곳이었다.
다음에 만약에 또 오게 된다면, 마카오에서 적어도 1박 정도는 해보고 싶다. 그때는 에그타르트랑 쭈빠빠오도 먹고, 좀 더 여유 있게 동네 구경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16시에 떠나는 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 떠나야만 했다. 이번에도 살짝 아슬아슬했지만, 다행히 셔틀버스가 아닌 택시를 타고 가서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17시쯤 홍콩에 도착했다. 돌아가기 전날인데, 아직도 고기 국수를 먹지 못했기 때문에 침차이키에서 이른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트램을 타고 페리 터미널에서 침차이키로 향했다. 전날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갔다가 본 기억이 있어 더욱 쉽게 찾아갔다. 5시 30분쯤 도착하니 줄이 없었고, 4인석으로 안내받았다. 3명이었지만 남자 셋이어서 그런지 합석은 안 했다. 다만 우리 뒤로 들어온 1인 손님들은 모두 서로 마주 보고 먹는 테이블에서 합석해서 우리가 운이 좋았나 싶었다.


우리는 어차피 저녁에 호텔 근처에서 또 식사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육식맨이 시킨 것과 똑같이 Three Toppings Noodle 3개에 Vegetable with Oyster Sauce를 하나 시켰다. 국수에 들어간 면은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먹는 면과는 다른 광둥식 에그 누들이라고 하는데, 친구가 이게 다 익은 게 맞느냐고 할 정도로 아주 꼬들꼬들한 식감이었다. 나는 되게 맛있게 먹긴 했는데, 친구는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Vegetable with Oyster Sauce는 그냥 궁금해서 시켜봤는데 중국 식당을 가면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야채찜 정도였다.
음식 맛은 호불호는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솔직히 줄을 서서 먹을 정도의 맛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간단히, 저렴하게 한 끼 해결하기에는 충분했다.
첫날부터 호텔 주변을 돌아다녀 보니 우리 호텔 주변에 유난히 피자집들이 많았다. 도미노피자나 피자헛 이런 프랜차이즈들이 아닌, 개방형 주방에서 직접 도우부터 만들고, 피자를 구워서 손님에게 바로 내놓는 그런 피자집들이 호텔 밖으로 나올 때마다 눈에 보였다. 궁금해서 찾아보면 하나같이 다 구글 평점도 좋고, 장사도 굉장히 잘 되는 것 같았다.
마지막 날이니 홍콩 음식을 조금 더 먹어봐도 좋았겠지만, 매일 “피자 먹고싶다”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는데, 피자를 안 먹는 것도 아쉬울 것 같아서 그냥 피자를 먹으러 갔다. 원래는 베이크하우스 바로 옆에 있는 Little Napoli Pizzeria를 가려 했지만, 월요일은 휴무 탓에 영업을 안 했다. 그래서 친구가 대안으로 찾은 Motorino라는 곳을 방문했다. 구글 평점은 Little Napoli Pizzeria가 4.0, Motorino가 4.5로 오히려 더 좋았다.
우리는 마르게리타 피자와 콰트로포르마지, 그리고 피자와 잘 어울린다고 추천받은 스파클링 레드 와인을 시켰다.
우리가 주문하자 테이블 옆에 있는 개방형 주방에서 직원들이 피자 도우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피자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더욱 기대되었다.
기대한 만큼 맛있었다. 도우도 쫄깃하고, 치즈도 느끼하지 않고 맛있었다. 고추기름 같은 것도 갖다 주셨는데 확실히 콰트로포르마지 피자와 잘 어울렸다. 그런데 우리가 피자를 만들 때 그 분들을 계속 쳐다봐서 그럴까? 직원 분들이 자꾸 주방 넘어로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셨다. 자꾸 눈이 마주쳐서 웃겼다.
고기 국수를 먹고 오긴 했지만, 피자 양이 그렇게 많지 않기도 했고 워낙 맛있어서 와인부터 피자까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식사 중에 어느 테이블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요청했는지 직원들이 모두 나와 노래를 불렀는데, 영어가 아니라 광둥어로 불러주셔서 덕분에 광둥어로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결제는 카드로만 되었고, 현금은 금액을 딱 맞춰서 주지 않는 이상 받기 어렵다고 했다. 다시 올 의향이 있는 맛집이었다.
우리 호텔 방에서 보면 고층 건물들 한가운데에 운동장이 보였다. 의도하고 찾아간 것은 아니지만, 피자를 먹고 나와서 산책을 하다 눈에 보여서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 보았다. 들어가 보니 농구장과 축구장이 있는 제법 넓은 운동 시설이었다. 젊은 친구들이 나와서 농구를 하고 있고, 아들과 아버지가 공을 차고 놀고 있었다. 스탠드에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여기는 나름 유서 싶은 홍콩의 체육 시설이었다. 1934년에 지어져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홍콩 시민의 체육, 휴식 공간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그저 오랜만에 친구들끼리 공을 차고 놀 공간일 뿐이었다. 마침 누군가가 버리고 간 아주 허름한 공이 있길래 우리도 축구장 안에 들어가 공을 차며 놀았다.
얼마 만에 친구들과 이러고 놀았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는 밥 먹듯이 축구하고 같이 놀았지만, 이제는 다들 나이 먹고 일하느라 공을 차기는커녕 얼굴 보기도 어려워졌다. 그래서인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행복했다.
한국에 와서 지인들에게 홍콩 가서 축구를 했다고 했더니 다들 왜 굳이 거기까지 가서 그러고 놀았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축구도 하고, 홍콩 현지인들이 퇴근 이후에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충분히 기억에 남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또 홍콩 여행을 오게 되면 또 오고 싶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이대로 들어가기는 아쉬워 호텔 바로 앞에 있는 THAIWAN (태국 + 대만)이라는 수상한 이름의 술집에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이름대로 태국과 대만 지도가 그려진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고 그게 나름대로 컨셉인듯 했다. 직원들도 태국 출신인 것 같았는데 내부 인테리어와 직원들 국적 외에는 사실 태국, 대만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열었고, 맥주가 맛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홍콩 술집들이 원래 문을 일찍 닫는 건지, 우리 호텔 주변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업 중인 술집이 이곳 외에는 없었다. 우리 말고도 와이셔츠 입은 홍콩 직장인들도 퇴근 후에 한둘씩 모여들어 늦은 시간임에도 제법 손님이 많이 있었다.
친구들이랑 사람 구경도 하고, 사는 얘기, 옛날 얘기 등 별 얘기를 다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났다. 맥주도 금방 마셔서 결국 한 잔씩 더한 다음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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