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어느 주말 아침 눈을 떠보니 군대 동기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그것도 새벽
2시에 보낸 카톡이.
오랜만에 온 연락이라 무슨 일일까 싶어 바로 연락해 보았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최근 마음 아픈 일을 겪었단다. “ㅋ“을 섞어 표현하긴 했지만,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을 법한 일이었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어 보니 지금은 부산, 정확히는 기장에 살고
있다더라.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고향인 인천에 살던 녀석이 기장에 지낸
지 3년째라고 했다. 정말 요즘 시간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마침, 여름휴가를 떠나고 싶기도 했고, 친구 이야기라도 들어주며 위로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부산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부산 여행 계기가 된 카카오톡 메시지
8월 28일 금요일, 12시쯤 퇴근 후 회사 앞 버거킹에서 식사하고, 수서역으로 향했다.
13시 55분 기차였는데 내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 13시쯤 수서역에 도착했다. 역사
내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벤치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혼자 이렇게 여행을 떠나는 건 처음이었다.
이전에도 혼자 비행기를 탄다든지, 목적지에 먼저 도착해 일행을 기다린다든지 하는
경험은 있었지만, 아예 여행 준비 단계부터 오로지 나만을 위해 계획하고 떠난 여행은
해본 적이 없다. 물론 가서 친구를 만나긴 하지만, 그래도 여행 내내 같이 있는 건
아니니 내 인생 첫 혼자 떠난 여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 구경도 하고, 킨들로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기차
출발 시간이 다가왔다. 수서역에서 부산역까지 가는 SRT는 약 2시간 반 정도 걸렸다.
내 앞자리에 앉은 꼬마가 내가 어릴 때 제일 좋아했던 퍼시 잭슨 시리즈 책(Mark of
Athena)을 읽고 있는 걸 보고 너무 반가워서 말을 걸고 싶었지만, 30대 아저씨가
꼬마에게 말을 거는 건 너무나도 꼴불견일 것 같았다. 대신, 나도 다음에 알라딘에
가면 오랜만에 퍼시 잭슨 시리즈 책을 사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기차가 부산역에 도착할 때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묵을 호텔은
부산역 바로 앞에 있어,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체크인 후 침대에 누워 잠시 쉬고
있으니, 친구가 퇴근 후 호텔로 왔다. 친구를 만나 서면역 근처에 있는 횟집으로
향했다.
부산에 오면 대선 소주를 꼭 먹어보고 싶어 시켰는데, 기대와는 달리 상당히 맛이
없었다. 대선을 시키자고 할 때 친구가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고 알아채야 했는데.
참이슬이나 처음처럼에 물을 탄 것 같은 맛이었다.
그래도 회와 술을 먹으니, 오랜만에 본 친구와 어색함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친구는 회사 연수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기장으로 왔고, 여기서 돈도
잘 벌고, 차도 있고, 사택도 있어 잘 지내는 듯했다.
아마 이제 직장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결혼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일이 좀 꼬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동안 친구가 마음을 잘 추슬렀기 때문일까. 내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친구가 잘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이 친구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런 일이 생각보다 종종 있고, 차라리 결혼 후에 알게 되는 것보다는 결혼 전에
알게 되는 게 훨씬 낫다는 것뿐이었다. 조상님들이 도와주신 것 같으니 이번 명절 때
비싼 술을 들고 가 음복하라고 했다.
친구가 사준 회
저녁 식사를 하고 광안리로 향했다. 약 11년 전, 대학생 때 친구들과 내일로를 타고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도 이번처럼 부산에서 하루만 묵었는데, 그때는 워낙
막무가내로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여행하던 때라, 기껏 부산까지 와서는 광안리도
안 가고 숙소에서 당시 방영하던 “너목보”라는 예능을 보다가 노래방 가서 놀다 온
기억밖에 없다.
차승현 군이 목놓아 부르던 그 노래
비가 와서 그런지 금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광안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광안리 해변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
소화도 시키고, 경치 구경도 할 겸 광안리 해변을 따라 걸었다. 사람도 없고, 밤에
봐서 그런지 특별할 건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바다라 그런지,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가 좋더라.
사실 오늘 회를 먹기로 했을 때, 혹시나 부산까지 와서 체할까봐 걱정했었다. 몇 년
전부터 체력이 떨어지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 회사에
다닐 때는 반기에 한 번씩 체했는데, 지금은 거의 분기에 한 번씩 체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냥 늙었나보다 했는데, 사실 내가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건강검진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나오니, 아마도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닐까
싶다.
최근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나에게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라고 조언해 주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한 친구도 내가 예민한 편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주위에서 그렇게 말해주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언제쯤부터였을까. 어릴 때도 이런 성격이었을까. 아니면 어른이 되면서 이런 성격이
된 걸까. 왠지 아주 어릴 때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고, 고등학교 2~3학년
때부터 조금씩 변한 것 같기도 하다. 아마 그때쯤부터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이런 성격에도 장단점은 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어릴 때보다 개성도 생기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등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다만, 이런 것들을 이루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며 여러 번 실패도 겪어야 하는 법인데 내가 그런 과정에서 오는
불안감과 조급함을 잘 다스리지 못했나 보다.
광안리 해변에 서서 파도 소리를 듣다 보니, 문득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다니던 기억이 났다. 성당에서는 미사 중반부 쯤에 신자들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신자들이 서로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하는데,
나는 그 말의 뜻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그 말의 의미가 조금 와닿는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서로에게 마음의 평화를 빌어주는, 참 좋은 인사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친구,
그리고 내 주변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본다.
광안리 해변 파라솔들
#부산여행 #광안리 #혼자여행
홍콩 여행 - 3일차 (마카오)
10시 마카오행 배를 타기 위해 호텔에서 9시 반에 나섰다. 분명 전날 잠들기 전 초행길이니 늦어도 9시 20분에는 호텔에서 나오자고 했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늘 그렇듯 예상보다 늦게 출발했다.
첫날 기내에서 난동부린 아저씨로 액땜한 덕일까. 완차이 역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타려던 Island Line 지하철은 이미 와있었고, 우리가 타자마자 출발했다. 셩완 역에 내린 후에도 친구가 미리 구매한 QR 코드로 빠르게 페리 티켓을 교환했고, 페리 탑승장에 도착한 순간 바로 탑승을 시작해 얼떨결에 1분의 대기도 없는, 아주 효율적인 이동을 할 수 있었다. 누가 보면 홍콩에 수십 번 와본 사람들로 착각하겠다.
마카오행 페리는 매우 컸고, 터미널에서 출발 직후를 제외하면 흔들림도 거의 없었다. 우리 모두 배 멀미를 하지 않았으며,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아도 배 멀미로 고생하는 것 같은 사람은 없었다. 배가 큰 만큼 캐리어를 둘 공간도 있었고, 화장실 및 간이식당도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탑승객 수 대비 화장실이 적어서 운항 도중 화장실 앞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전날 훠궈를 먹고 배탈이 난 친구는 배에서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홍콩에서 마카오까지는 약 50분 정도 걸렸다. 주변에 시끄러운 사람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에 이어폰을 가져와 참 다행이었다. 친구들은 왜 치사하게 혼자만 이어폰을 챙겨왔느냐고 뭐라 했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마카오행 페리 좌석에 붙어있던 웰컴 커버
마카오에 도착해 입국 절차를 마친 후 베네시안 호텔에서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러 이동했다. 마카오에 있는 여러 고급 호텔들이 마카오 핵심 지역을 지나는 무료 셔틀을 제공하는데, 투숙객이 아니어도 이용 가능해 많은 관광객이 사용한다. 버스는 약 15분에서 20분마다 한 번씩 오는 것 같았는데 출발지에서는 버스가 가득 차야 이동하는 것 같았다. 무료 셔틀버스지만 우리나라 우등 관광버스에 못지않게 쾌적했고 에어컨도 잘 나와 굉장히 쾌적했다. 다만, 페리 터미널에서 나와 셔틀버스 탑승장까지 거리가 꽤 되었다. 일반 시내버스 탑승장을 지나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그래도 공짜로 버스를 태워준다는 데 이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베네시안 호텔 카지노
베네시안 호텔에 내려 잠시 호텔 내부를 구경했다.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다녔다. 비싼 가게, 카페, 식당들이 있었고 카지노에는 심각한 얼굴을 한 채 딜러의 손동작을 주시하는 여러 도박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아직 낮이라 그런지 카지노는 텅 비어있는 수준에 가까웠다.
아침을 못 먹은 상태로 마카오에 넘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배를 채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우리가 찜해둔 포르투갈 식당이 있는 Taipa Food Street로 향했다. 베네시안 호텔에서 걸어서 약 20분 정도 소요되었는데, 가는 길에 에스컬레이터도 있었고, 나무들이 있는 산책로도 있어 따스한 날씨에도 걸을만했다. 앞서 등장한 배탈이 난 친구는 여기서도 가는 길에 화장실을 들렀는데, 휴지가 없어 나에게 급히 SOS를 쳤다. 내 티슈…
Taipa Food Street로 가는 길
개인적으로 마카오에서 가장 기대한 건 포르투갈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 스페인에 살 때 포르투갈 식당에 여러 번 가봤는데, 단 한 번도 맛이 없던 적이 없었다. 가끔은 스페인 음식보다 더 맛있지 않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포르투갈 식당에 가서 친구들에게 아는 체할 생각에 매우 신이 났다.
다만, 신이 난 것에 비해 마카오 포르투갈 식당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 포르투갈 식당은 커녕 마카오에 관해 공부를 전혀 안 해왔으니 말이다. 다행히 친구가 그나마 좀 검색을 해왔고, 그 중 구글 리뷰가 좋았던 Portugalia로 향했다.
예약도 안 한 채, 구글 평점만 믿고 향한 Portugalia는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열었고, 그래서인지 텅 비어있었다. 아주 친절한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4인용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문어 샐러드, 감바스, Arroz de Marisco, 조개찜, 그리고 상그리아를 주문했다.
Portugalia에서 먹은 음식들
정말 맛있었다! 첫 번째 사진에 있는 Arroz Marisco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스페인 요리 중 Arroz Caldoso와 비슷한 음식인데, 해산물이 많이 들어간 뜨끈한 어죽 같은 요리다. 한국 사람들 입맛에 정말 잘 맞을, 호불호 없는 요리라고 생각한다. 조개찜도 정말 맛있었는데, 첫 번째 사진 오른쪽 위에 보면 조개찜을 우리가 싹싹 긁어먹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감바스는 우리가 아는 맛 그대로라 마음 놓고 시켜도 되고, 식전빵을 찍어 먹으면 아주 맛있었다. 우리는 조개찜, 감바스 모두 빵을 찍어 먹다 보니 모자라서 식전빵을 추가 주문해야만 했다. 네 번째 사진에 있는 요리는 Bacalao (바깔라오, 스페인/포르투갈어로 대구)인데, 대구구이 위에 감자와 올리브를 얹은 요리다. 직원 분이 Portugalia 대표 메뉴라고 추천해주셔서 주문했는데,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실제로 스페인에 살 때 대구 요리를 많이 먹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굳이 시켜야 할 메뉴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문어 샐러드는 상큼한 맛으로 애피타이저로 딱 맞았다.
배가 고파서였을까. 정말 게눈 감추듯 모든 음식을 먹어치웠다. 상그리아까지 마시니 다들 살짝 취기가 올라왔다. 플란, 크렘브륄레, 쌀 푸딩까지 후식으로 먹으니 정말 행복했다. 먹는 내내 나오는 요리마다 아는 척을 해서 오늘의 아는 척 할당량도 채울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잠시 앉아 휴식 시간을 보냈는데, 어떤 직원분이 와서 갑자기 너희는 왜 문어구이를 안 먹었느냐고 물어보셨다. 알고 보니 이 식당에 오는 한국인이 모두 시키는 메뉴라는데,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미슐랭 식당에서 친구들과 맛있게 한 끼를 먹을 수 있어 감사했다.
Portugalia 내부에 있던 타일 장식
식사 후 세나도 광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또다시 무료 셔틀버스를 찾아 나섰다. 이번에는 시티 오브 드림즈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그쪽으로 향했다.
시티 오브 드림즈로 가는 길에 본 Dinner In The Sky
거리가 꽤 됐지만, 식사한 직후여서 소화도 시킬 겸 걸어갔다. 오랜만에 느끼는 따스한 날씨라 참 좋았다. 가는 길에 공중에서 식사하는 식당인 Dinner In The Sky도 봤는데, 저기서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수로 식기구를 떨어트리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졌다.
시티 오브 드림즈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세나도 광장까지는 제법 오래 걸렸던 느낌이다. 못 해도 20분은 간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마카오 구경도 하고, 에어컨 바람도 쐬고 나쁘지 않았다.
세나도 광장 주변을 걸으며
시티 오브 드림즈, 베네시안 호텔이 있는 곳에서 쭉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 마카오 반대편으로 넘어오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쪽이 훨씬 예쁘다고 외쳤다. 유럽을 연상시키는 자갈길과 건물들이 마카오식 건물들과 어우러져 너무 멋지게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반대쪽보다 사람이 훨씬 많긴 했지만, 친구들과 젤라또를 나눠 먹고 육포를 시식하며 걷기 딱 좋았다.
성 바오로 대성당 유적
사실 처음에 마카오에 가기로 했을 때는 카지노에서 도박할 것도 아니고 뭐를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물론 베네시안 호텔이나 시티오브드림즈는 내 취향과는 별로 맞지 않았지만, 세나도 광장 쪽은 매우 예뻐서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여기서 1박을 할 걸 그랬다며 다들 아쉬워했다. 천천히 산책하며 동네 구경도 하고, 카페도 여러 번 들리고, 맛집 방문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잘 맞을 것 같은 곳이었다.
다음에 만약에 또 오게 된다면, 마카오에서 적어도 1박 정도는 해보고 싶다. 그때는 에그타르트랑 쭈빠빠오도 먹고, 좀 더 여유 있게 동네 구경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16시에 떠나는 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 떠나야만 했다. 이번에도 살짝 아슬아슬했지만, 다행히 셔틀버스가 아닌 택시를 타고 가서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카오 페리 터미널에서 본 장식
홍콩 페리 터미널에 도착해서 본 안내판
17시쯤 홍콩에 도착했다. 돌아가기 전날인데, 아직도 고기 국수를 먹지 못했기 때문에 침차이키에서 이른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트램을 타고 페리 터미널에서 침차이키로 향했다. 전날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갔다가 본 기억이 있어 더욱 쉽게 찾아갔다. 5시 30분쯤 도착하니 줄이 없었고, 4인석으로 안내받았다. 3명이었지만 남자 셋이어서 그런지 합석은 안 했다. 다만 우리 뒤로 들어온 1인 손님들은 모두 서로 마주 보고 먹는 테이블에서 합석해서 우리가 운이 좋았나 싶었다.
침차이키에서 시킨 메뉴
우리는 어차피 저녁에 호텔 근처에서 또 식사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육식맨이 시킨 것과 똑같이 Three Toppings Noodle 3개에 Vegetable with Oyster Sauce를 하나 시켰다. 국수에 들어간 면은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먹는 면과는 다른 광둥식 에그 누들이라고 하는데, 친구가 이게 다 익은 게 맞느냐고 할 정도로 아주 꼬들꼬들한 식감이었다. 나는 되게 맛있게 먹긴 했는데, 친구는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Vegetable with Oyster Sauce는 그냥 궁금해서 시켜봤는데 중국 식당을 가면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야채찜 정도였다.
음식 맛은 호불호는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솔직히 줄을 서서 먹을 정도의 맛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간단히, 저렴하게 한 끼 해결하기에는 충분했다.
첫날부터 호텔 주변을 돌아다녀 보니 우리 호텔 주변에 유난히 피자집들이 많았다. 도미노피자나 피자헛 이런 프랜차이즈들이 아닌, 개방형 주방에서 직접 도우부터 만들고, 피자를 구워서 손님에게 바로 내놓는 그런 피자집들이 호텔 밖으로 나올 때마다 눈에 보였다. 궁금해서 찾아보면 하나같이 다 구글 평점도 좋고, 장사도 굉장히 잘 되는 것 같았다.
마지막 날이니 홍콩 음식을 조금 더 먹어봐도 좋았겠지만, 매일 “피자 먹고싶다”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는데, 피자를 안 먹는 것도 아쉬울 것 같아서 그냥 피자를 먹으러 갔다. 원래는 베이크하우스 바로 옆에 있는 Little Napoli Pizzeria를 가려 했지만, 월요일은 휴무 탓에 영업을 안 했다. 그래서 친구가 대안으로 찾은 Motorino라는 곳을 방문했다. 구글 평점은 Little Napoli Pizzeria가 4.0, Motorino가 4.5로 오히려 더 좋았다.
Motorino 내부
우리는 마르게리타 피자와 콰트로포르마지, 그리고 피자와 잘 어울린다고 추천받은 스파클링 레드 와인을 시켰다.
우리가 주문하자 테이블 옆에 있는 개방형 주방에서 직원들이 피자 도우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피자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더욱 기대되었다.
마르게리타 피자
기대한 만큼 맛있었다. 도우도 쫄깃하고, 치즈도 느끼하지 않고 맛있었다. 고추기름 같은 것도 갖다 주셨는데 확실히 콰트로포르마지 피자와 잘 어울렸다. 그런데 우리가 피자를 만들 때 그 분들을 계속 쳐다봐서 그럴까? 직원 분들이 자꾸 주방 넘어로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셨다. 자꾸 눈이 마주쳐서 웃겼다.
Motorino의 화덕과 주방
고기 국수를 먹고 오긴 했지만, 피자 양이 그렇게 많지 않기도 했고 워낙 맛있어서 와인부터 피자까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식사 중에 어느 테이블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요청했는지 직원들이 모두 나와 노래를 불렀는데, 영어가 아니라 광둥어로 불러주셔서 덕분에 광둥어로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결제는 카드로만 되었고, 현금은 금액을 딱 맞춰서 주지 않는 이상 받기 어렵다고 했다. 다시 올 의향이 있는 맛집이었다.
우리 호텔 방에서 보면 고층 건물들 한가운데에 운동장이 보였다. 의도하고 찾아간 것은 아니지만, 피자를 먹고 나와서 산책을 하다 눈에 보여서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 보았다. 들어가 보니 농구장과 축구장이 있는 제법 넓은 운동 시설이었다. 젊은 친구들이 나와서 농구를 하고 있고, 아들과 아버지가 공을 차고 놀고 있었다. 스탠드에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여기는 나름 유서 싶은 홍콩의 체육 시설이었다. 1934년에 지어져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홍콩 시민의 체육, 휴식 공간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그저 오랜만에 친구들끼리 공을 차고 놀 공간일 뿐이었다. 마침 누군가가 버리고 간 아주 허름한 공이 있길래 우리도 축구장 안에 들어가 공을 차며 놀았다.
얼마 만에 친구들과 이러고 놀았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는 밥 먹듯이 축구하고 같이 놀았지만, 이제는 다들 나이 먹고 일하느라 공을 차기는커녕 얼굴 보기도 어려워졌다. 그래서인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행복했다.
한국에 와서 지인들에게 홍콩 가서 축구를 했다고 했더니 다들 왜 굳이 거기까지 가서 그러고 놀았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축구도 하고, 홍콩 현지인들이 퇴근 이후에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충분히 기억에 남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또 홍콩 여행을 오게 되면 또 오고 싶다.
호텔 방에서 보이던 고층 건물 사이 운동장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이대로 들어가기는 아쉬워 호텔 바로 앞에 있는 THAIWAN (태국 + 대만)이라는 수상한 이름의 술집에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이름대로 태국과 대만 지도가 그려진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고 그게 나름대로 컨셉인듯 했다. 직원들도 태국 출신인 것 같았는데 내부 인테리어와 직원들 국적 외에는 사실 태국, 대만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THAIWAN에서 마신 맥주
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열었고, 맥주가 맛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홍콩 술집들이 원래 문을 일찍 닫는 건지, 우리 호텔 주변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업 중인 술집이 이곳 외에는 없었다. 우리 말고도 와이셔츠 입은 홍콩 직장인들도 퇴근 후에 한둘씩 모여들어 늦은 시간임에도 제법 손님이 많이 있었다.
친구들이랑 사람 구경도 하고, 사는 얘기, 옛날 얘기 등 별 얘기를 다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났다. 맥주도 금방 마셔서 결국 한 잔씩 더한 다음 하루를 마무리 했다.
#홍콩여행 #마카오 #Portugalia #세나도광장 #Motorino
홍콩 여행 - 2일차
홍콩에서 맞는 첫 아침은 마이컵오브티에서 차찬텡을 먹는 것으로 시작했다.
9시 15분쯤 갔는데, 벌써 대기 중인 사람들이 있었다. 다행히 줄이 길지 않았고, 줄을 서자마자 곧바로 바 테이블 쪽으로 안내 받았다.
짧은 웨이팅 중 찍은 밀크티와 우유
차찬텡 식당에서는 주문을 빠르게 해야 하고, 음식도 그만큼 빠르게 나온다고 한다. 직원들도 어딘가 퉁명스럽고, 식기구도 툭툭 던져놓고 가는 게 여기선 일반적이라고 한다. 실제로 여행 준비하면서 찾아본 많은 블로그나 식당 리뷰들에 이런 얘기가 쓰여있었기 때문에 마이컵오브티에서는 과연 어떨지 궁금했는데, 그렇게 붐비는 시간대가 아니어서 그런지 종업원들이 우리를 재촉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바 테이블에 앉아 차가 끓는 모습을 보니 배가 더 고팠다. 음식은 소문대로 정말 빨리 나왔다. 정확히 재보지는 않았지만, 5분도 안 걸린 것 같다.
밀크티
밀크티는 눈이 번쩍 뜨이는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계속 손이 가는 맛이었다. 생각보다 홍콩 음식이 대체로 슴슴한 편이었는데, 밀크티 역시 적당히 달고 차 향도 그대로 느껴져서 좋았다.
파인애플 번 with 버터
제일 기대했던 파인애플 번은 명성 그대로였다. 사실 소보루 빵 안에 차가운 버터를 넣은 평범한 조합이지만 진짜 맛있었다. 담백한 빵에 짭조름한 버터의 맛이 참 좋았다. 홍콩 살면 매일 아침 파인애플 번과 밀크티를 먹을 것 같다.
마카로니 토마토 비프 수프
밀크티, 파인애플 번 외에도 마카로니 토마토 비프 수프, Satay Beef Noodle, 거위알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그 중 마카로니 토마토 비프 수프가 제일 맛있었다. 시큼하면서 짭조름한 오묘한 맛이 상당히 중독성이 있었다. Satay Beef Noodle도 맛있긴 했는데 허브향도 나고 익숙치 않은 맛이라 분명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거위알 샌드위치는 돈이 아까웠다.
분명 우리가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줄이 거의 없었는데, 밥을 다 먹고 나오니 줄이 길게 서있었다. 우리가 타이밍이 좋게 왔다 가는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침을 든든히 먹은 후, 점심에 가기로 한 식당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마침 그 근처에 친구가 꼭 가고 싶다던 제니 베이커리가 있어 침사추이 역으로 향했다.
완차이 역에서 침사추이 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간 다음, D 출구로 나와 제니 베이커리를 찾아갔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안 나와서 당황했지만 주변에 제니 베이커리 봉투를 들고 있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을 따라가니 제니 베이커리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알고보니 제니 베이커리는 2층에 있었는데, 우리는 1층만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컵오브티에서는 웨이팅을 피했지만, 이 곳에서는 피할 수 없었다. 2층에 올라와서 보니 줄이 가게 밖으로 길게 서있어서 당황했지만 쿠키만 사고 바로 나오는 구조라 10분도 기다리지 않았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앞에 있는 메뉴를 보고 미리 살 것을 정했다. 나는 11번 4 Mix Butter Cookies - Small으로 세 통 구매했다. 현금 결제만 가능해서 홍콩에 와서 처음으로 현금을 내밀었다. 세 통 뿐이지만 제법 무거웠다. 집에 들고 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무겁긴 했지만 회사에서 반응이 아주 좋아서 기분이 좋았다.
다음 목적지는 미슐랭 1스타 식당 Yat Tung Heen. 미식의 도시에 왔으니 미슐랭 한번 쯤은 가보자 해서 미리 한국에서 예약하고 온 식당이다. 예약은 구글 맵을 통해서 했고 방문 전 날 예약 확인 이메일을 받았다. 딤섬 맛집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품고 찾아갔다. 제니 베이커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예약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어 천천히 걸어 가기로 했다.
영화 ’중경삼림’의 주요 배경 충킹맨션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중경삼림의 주요 배경 중 하나인 충킹맨션이 있어 사진을 찍어봤다. 내부를 구경할까 했지만 크게 관심이 생기지 않아 지나쳤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모스크가 있길래 신기해서 그 쪽으로 향했다. 침사추이 역 뒤에 있는 곳인데, 역에서부터 히잡을 쓴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막상 들어가니 모스크 입구는 안 보이고 뒷편에 공원이 있길래 들어가 보았다.
공원에 들어가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국적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무리를 지어서 공원 그늘 진 곳을 모두 점령하고 있었다. 다들 바닥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수다 떨고 있었는데 냄새가 심상치 않았다. 그 중 일부는 우리를 보고 한국 사람들이라고 가리키며 “안녕하세요”를 외치기도 했다.
공원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모스크를 지나 공원 안으로 더 들어가니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커다란 분수 앞에는 한껏 꾸미고 온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분명 네이버에서 공원 어딘가에 플라밍고가 있다고 본 것 같았지만 어디에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은 후, Yat Tung Heen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이 지하에 있는데 정확한 입구가 어딘지 알 수 없어 살짝 헤맸다. 우리가 들어간 곳이 계단 밖에 없어서 걸어 내려갔는데 층고가 높아서인지 한참 걸렸다.
Yat Tung Heen
우리는 Dim Sum Set Lunch Menu A를 시켰고, 추가로 창펀과 족발을 시켰다. 사실은 친구가 애저구이인 줄 알고 시켰는데 족발이었다.
맛은 그렇게까지 특별하지는 않았다. 코스 요리라 메뉴가 다양하긴 한데 솔직히 그 중 “와 정말 맛있네” 하는 메뉴는 하나도 없었다. 미슐랭을 너무 맹신한 탓일까.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확인해보니 런치 코스를 시키기 보다는 딤섬을 단품으로 여러 개 시켜먹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현지인들이 많이 보였다. 가족 단위로 와서 식사하는 분위기였다. 만약에 다시 온다면 부모님과 함께 올 것 같다. 식당도 넓고, 깨끗하고, 직원들도 친절하고, 합석도 안 해도 되니 가족 식사를 하기에 괜찮은 것 같다. 음식도 엄청나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큰 호불호 없이 다들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물론 내 돈 내고 다시 갈 생각은 없다.
식사를 마친 후 2층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 낮잠을 잤다.
호텔에서 푹 쉰 후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트램을 타고 갔는데 퇴근 시간과 겹쳤는지 사람들이 많았다. 친구들은 2층, 나는 1층에 서서 갔는데 창문이 열려있어 바람도 솔솔 불고 즐거웠다. 버스는 앞으로 타고 탈 때 옥토퍼스 카드를 찍는데, 트램은 정반대로 뒤로 타고 내릴 때 카드를 찍는 것도 신기했다.
트램에서 내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걸어가다 센트럴 마켓을 발견했다. 들어가 보니 각양각색의 기념품 가게, 까페, 음식점 등이 있었고 홍콩에서 인기가 많은 에그 와플을 사먹었다. 모양이 재밌어서 먹어봤는데, 그냥 땅콩과자 맛이었다.
센트럴 마켓,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정말 길었다. 길긴 긴데,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가고 하나의 에스컬레이터가 쭉 이어진다기 보다는 여러 엘리베이터가 이어지는 느낌이라 잠깐 탔다 내리고를 반복했다. 그래도 올라가면서 바로 앞에 있는 건물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홍콩 특유의 대나무 비계도 볼 수 있고, 여러 식당, 까페, 술집들을 볼 수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그 중 제일 인기 많은 곳은 베이크하우스 같았는데, 우리 호텔 앞에 있는 베이크하우스와 달리 여기는 진짜 줄이 길었다. 우리는 베이크하우스 말고 Vission Bakery라는 곳에서 Matcha Mochi Danish를 사먹었는데 빵 밑에 모찌가 깔려있어서 쫀득쫀득하고 정말 맛있었다. 홍콩에서 먹은 디저트 중 제일 맛있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한 방향으로만 운행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올라가면 걸어내려오기 힘들 것 같아 적당한 지점에서 내렸다. 분명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는 해가 아직 떠있었는데, 내려올 때 쯤 되니 어둑어둑 해졌다. 딱히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배가 고플 때까지 정처없이 어슬렁거렸다.
저녁은 훠거를 먹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3일차 쯤 홍콩 음식이 물려서 얼큰하고 매운 음식을 찾는다는데, 우리는 2일차부터 매운 음식을 찾아나섰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고, 친구가 미리 구글 맵스로 예약을 했다.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아무 문제 없었다.
많은 중국 식당들이 그렇듯 여기도 QR 코드를 찍어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다행히 영어 메뉴도 있었고 익숙한 요리/재료들이어서 왕창 시켰다. 백탕과 홍탕을 시켰는데 분명 Mild한 맵기를 택했는데도 홍탕은 엄청 매웠다. 어떤 친절한 종업원 분이 번역기까지 써가면서 야채는 홍탕에 넣으면 매운 기름을 다 빨아들여서 백탕에만 넣어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근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홍탕에 배추를 왕창 넣고 “김치다 김치” 하면서 먹었는데 너무 매워서 두유를 시켜야만 했다. 근데 두유가 너무 달고 맛있어서 그것도 나름대로 재밌는 경험이었다.
Uncle Fong 훠궈집에서 저녁을 배터지게 먹고나서야 고국의 음식에 대한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홍콩 온지 24시간됨). 샤브샤브 집에서 파는 죽 같은 건 없나 하고 메뉴를 뒤져봤지만 그런 건 없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 후 하루를 마무리 하기 위해 술집을 찾아나섰다. 마침 근처에 가보고 싶었던 재즈 바 Iron Fairies가 있어 거기로 향했다.
우리는 9시 쯤 들어갔고 그때는 아직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커다란 테이블 하나를 우리가 전부 차지했다. Iron Fairies 천장에는 10,000개의 요정 장식이 달려있고, 테이블에도 요정 모양 장식품이 놓여 있었다. 친구들과 칵테일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칵테일을 한 잔씩 더 시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다보니 10시 쯤 되었다. 그새 사람들이 가득 찼고, 친구들과 대화하려면 목소리를 높여서 얘기해야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한 직원이 계산서를 들이밀더니 다른 직원들은 일어서라고 하며 우리 의자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10시부터는 라이브 공연을 시작해서 다들 일어서서 놀 수 있게 미리 계산도 하고, 의자도 빼주는 것이었다.
라이브 공연을 하는 바는 처음 가본 거였는데, 너무 멋있었다. 무대 위 모두가 흥이 넘치고, 노래와 연주를 엄청 잘해서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KATSEYE의 Gabriela를 부를 때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고 바에 있는 모두가 춤을 췄다. 내 친구는 너무 신난 나머지 춤추며 천장에 있는 장식품을 손으로 계속 쳤다가 직원한테 혼났다. 부끄러웠다.
즐거운 밤이었다.
몇 시에 Iron Fairies에서 나왔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 트램이 돌아다니는 시간이었다. 일요일 밤인데도 야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홍콩 직장인들을 보니 귀국하면 출근해서 해야 할 것들이 생각이 났지만, 금새 잊고 홍콩 밤거리를 구경하며 호텔로 복귀했다.
#홍콩여행 #IronFairies #제니베이커리 #미드레벨에스컬레이터 #훠궈
홍콩 여행 - 1일차
2026년 3월 20일, 홍콩 익스프레스를 타고 홍콩 여행을 떠났다.
어떤 아저씨가 출발 직전 갑자기 고성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살짝 지연이 되긴 했지만, 다행히(?) 그 사람이 빠르게 비행기에서 내리며 예상 도착 시간에 제때 도착할 수 있었다. 아저씨가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비행기에서 내려서 친구들과 “이 정도면 그냥 집에 뭔가 놓고 온 게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어쨌건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홍콩 공항에 내려서 Klook으로 미리 예매한 옥토퍼스 카드를 픽업하고, HSBC ATM에서 토스 카드로 홍콩 달러를 뽑았다. 공항 철도 타는 곳 앞을 비롯해 공항 곳곳에 ATM기가 있으니 굳이 사람들 줄 서는 곳에서 뽑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공항 철도는 Klook에서 미리 티켓을 끊고 탔는데, 옥토퍼스 카드를 찍고 타는 것보다 이게 더 저렴했다. 공항 철도는 깨끗한 편이었고, 토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정방향 좌석, 역방향 좌석이 섞여 있는 구조였고 우리는 역방향으로 타서 조금 불편했다.
공항철도를 타고 홍콩역으로 가는 중
홍콩역
우리는 완차이 역에 있는 Hopewell Hotel에 묵었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5성급 호텔이었고, 친구들과 3박 동안 아주 편하게 지냈다. 지하철, 버스, 트램 모두 호텔 근처에서 탈 수 있었고 바로 앞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마이컵오브티, 베이크하우스 등 맛집들이 많아 만족스러웠다.
Hopewell 호텔 뷰
호텔 앞 벽화
호텔에 체크인한 다음 잠시 쉬다가 호텔 근처에 있는 Kam’s Roast Goose 로 향했다. 친구가 거위구이 먹고 싶다는 얘기를 몇 번 했었기 때문에 오기 전 미리 거위구이 맛집을 찾아봤는데, 구글 리뷰도 좋고 호텔과 가까워서 이 집을 택했다. 다만 11년 연속으로 미슐랭에 선정될 정도의 맛집이라 약 1시간 반 정도 웨이팅을 해야만 했다.
우리가 5시반 정도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웨이팅이 제법 있었고 우리는 7시가 넘어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에 아무 것도 모르고 사람들 옆에 섰는데 앞에 있는 홍콩 친구들이 번호표 받아야 하는 것을 알려줘서 다행히 크게 시간 낭비하지 않았다.
앞에 거위구이가 걸려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어찌나 많이 팔리는지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사진에 있는 거위는 다 팔리고 새 거위구이로 전부 교체되었다. 긴 기다림에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거위구이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Kam’s Roast Goose 거위구이
친구들이 지쳐서 거의 바닥에 앉아있을 때 쯤, 가게에서 직원이 나와 우리를 불렀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4인 테이블을 혼자 쓸 수 있었고 테이블이 구석에 있었기 때문에 짐을 놓을 자리도 있었다. 2명이서 가거나 혼자 가면 다른 사람들과 합석을 해야하는 것 같았는데, 좁고 불편해 보였다.
우리는 거위구이, 거위간, 차슈, 볶음국수, 그리고 오이를 시켰다. 거위구이는 정말 맛있었다. 거위 고기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껍질도 바삭바삭하고, 향도 개인적으로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나는 고수도 잘 먹고, 애초에 해외에서 냄새로 인해 음식을 못 먹어본 적이 없으니 그것은 감안해야 한다.
Kam’s Roast Goose에서 먹은 거위구이
아쉽게도 오이를 제외한 나머지 요리는 전부 별로였다. 거위간은 우리가 순대를 먹을 때 먹는 간과 비슷했는데, 우리는 간을 바짝 말려 먹는다면, 여기는 거위 간을 굉장히 부드럽게 쪄서 먹는 차이가 있었다. 차슈와 볶음국수는 맛이 없다기 보다는 아무 맛이 안 느껴지는 슴슴한 편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이는 새콤한 맛이라 느끼한 편인 거위와 잘 어울렸다.
Kam’s Roast Goose에서 먹은 차슈
Kam’s Roast Goose를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나는 거위구이와 흰 밥만 시킬 것 같다. 애초에 런치 메뉴 세트가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던데 이 구성이 제일 만족스러울 것 같다. 다만, 거위구이가 상당히 기름진 편이라 먹다보면 느끼할 수 있으니 오이와 콜라 또는 맥주 정도는 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Kam’s Roast Goose에서는 토스 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소화도 시킬 겸 그냥 무작정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홍콩 어딘가
작년에 번개장터에서 구매한 소니 RX100 M3를 이번 여행에 들고 갔는데 걸어 다니며 이것 저것 찍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선선한 날씨였기 때문에 걸어다니기 좋았고, 첫 날이라 그런지 다들 체력이 남은 상태라 거의 1시간 반 정도를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크리스마스 트리인가?
생각보다 길거리는 깨끗했고,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란콰이퐁 같은 곳을 갔으면 토요일 밤이니 길거리가 북적댔을 것 같지만, 우리는 그냥 발이 가는 대로 돌아다녔다.
걷다보니 Wan Chai Ferry Pier까지 왔다. 런닝하러 나온 사람들도 많았고 우리처럼 산책 나온 현지인들도 많았다. 버스킹을 하는 분도 있었는데 노래를 상당히 못해 인상 깊었다.
홍콩 야경
홍콩 트램
10시 쯤 되어 숙소 근처로 돌아와 근처에 있는 펍에서 맥주를 마셨다. 마침 토요일이라 EPL 경기가 진행 중이었는데, 여기는 리버풀 대 브라이튼 경기를 틀어줬다. 브라이튼이 리버풀을 압도하며 이긴 경기였는데, 브라이튼 윙어 Minteh가 인상 깊었다. 리버풀은 공격 전개도 시원찮은 편이었고 솔직히 브라이튼이 이길만한 경기였던 것 같다. 제임스 밀너가 브라이튼 선발로 아직도 뛰는 걸 보고 상당히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