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여행 - 2일차
홍콩에서 맞는 첫 아침은 마이컵오브티에서 차찬텡을 먹는 것으로 시작했다.
9시 15분쯤 갔는데, 벌써 대기 중인 사람들이 있었다. 다행히 줄이 길지 않았고, 줄을 서자마자 곧바로 바 테이블 쪽으로 안내 받았다.
차찬텡 식당에서는 주문을 빠르게 해야 하고, 음식도 그만큼 빠르게 나온다고 한다. 직원들도 어딘가 퉁명스럽고, 식기구도 툭툭 던져놓고 가는 게 여기선 일반적이라고 한다. 실제로 여행 준비하면서 찾아본 많은 블로그나 식당 리뷰들에 이런 얘기가 쓰여있었기 때문에 마이컵오브티에서는 과연 어떨지 궁금했는데, 그렇게 붐비는 시간대가 아니어서 그런지 종업원들이 우리를 재촉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바 테이블에 앉아 차가 끓는 모습을 보니 배가 더 고팠다. 음식은 소문대로 정말 빨리 나왔다. 정확히 재보지는 않았지만, 5분도 안 걸린 것 같다.
밀크티는 눈이 번쩍 뜨이는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계속 손이 가는 맛이었다. 생각보다 홍콩 음식이 대체로 슴슴한 편이었는데, 밀크티 역시 적당히 달고 차 향도 그대로 느껴져서 좋았다.
제일 기대했던 파인애플 번은 명성 그대로였다. 사실 소보루 빵 안에 차가운 버터를 넣은 평범한 조합이지만 진짜 맛있었다. 담백한 빵에 짭조름한 버터의 맛이 참 좋았다. 홍콩 살면 매일 아침 파인애플 번과 밀크티를 먹을 것 같다.
밀크티, 파인애플 번 외에도 마카로니 토마토 비프 수프, Satay Beef Noodle, 거위알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그 중 마카로니 토마토 비프 수프가 제일 맛있었다. 시큼하면서 짭조름한 오묘한 맛이 상당히 중독성이 있었다. Satay Beef Noodle도 맛있긴 했는데 허브향도 나고 익숙치 않은 맛이라 분명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거위알 샌드위치는 돈이 아까웠다.

분명 우리가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줄이 거의 없었는데, 밥을 다 먹고 나오니 줄이 길게 서있었다. 우리가 타이밍이 좋게 왔다 가는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침을 든든히 먹은 후, 점심에 가기로 한 식당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마침 그 근처에 친구가 꼭 가고 싶다던 제니 베이커리가 있어 침사추이 역으로 향했다.
완차이 역에서 침사추이 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간 다음, D 출구로 나와 제니 베이커리를 찾아갔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안 나와서 당황했지만 주변에 제니 베이커리 봉투를 들고 있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을 따라가니 제니 베이커리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알고보니 제니 베이커리는 2층에 있었는데, 우리는 1층만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컵오브티에서는 웨이팅을 피했지만, 이 곳에서는 피할 수 없었다. 2층에 올라와서 보니 줄이 가게 밖으로 길게 서있어서 당황했지만 쿠키만 사고 바로 나오는 구조라 10분도 기다리지 않았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앞에 있는 메뉴를 보고 미리 살 것을 정했다. 나는 11번 4 Mix Butter Cookies - Small으로 세 통 구매했다. 현금 결제만 가능해서 홍콩에 와서 처음으로 현금을 내밀었다. 세 통 뿐이지만 제법 무거웠다. 집에 들고 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다음 목적지는 미슐랭 1스타 식당 Yat Tung Heen. 미식의 도시에 왔으니 미슐랭 한번 쯤은 가보자 해서 미리 한국에서 예약하고 온 식당이다. 예약은 구글 맵을 통해서 했고 방문 전 날 예약 확인 이메일을 받았다. 딤섬 맛집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품고 찾아갔다. 제니 베이커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예약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어 천천히 걸어 가기로 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중경삼림의 주요 배경 중 하나인 충킹맨션이 있어 사진을 찍어봤다. 내부를 구경할까 했지만 크게 관심이 생기지 않아 지나쳤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모스크가 있길래 신기해서 그 쪽으로 향했다. 침사추이 역 뒤에 있는 곳인데, 역에서부터 히잡을 쓴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막상 들어가니 모스크 입구는 안 보이고 뒷편에 공원이 있길래 들어가 보았다.
공원에 들어가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국적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무리를 지어서 공원 그늘 진 곳을 모두 점령하고 있었다. 다들 바닥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수다 떨고 있었는데 냄새가 심상치 않았다. 그 중 일부는 우리를 보고 한국 사람들이라고 가리키며 “안녕하세요”를 외치기도 했다.
공원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모스크를 지나 공원 안으로 더 들어가니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커다란 분수 앞에는 한껏 꾸미고 온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분명 네이버에서 공원 어딘가에 플라밍고가 있다고 본 것 같았지만 어디에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은 후, Yat Tung Heen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이 지하에 있는데 정확한 입구가 어딘지 알 수 없어 살짝 헤맸다. 우리가 들어간 곳이 계단 밖에 없어서 걸어 내려갔는데 층고가 높아서인지 한참 걸렸다.




우리는 Dim Sum Set Lunch Menu A를 시켰고, 추가로 창펀과 족발을 시켰다. 사실은 친구가 애저구이인 줄 알고 시켰는데 족발이었다.
맛은 그렇게까지 특별하지는 않았다. 코스 요리라 메뉴가 다양하긴 한데 솔직히 그 중 “와 정말 맛있네” 하는 메뉴는 하나도 없었다. 미슐랭을 너무 맹신한 탓일까.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확인해보니 런치 코스를 시키기 보다는 딤섬을 단품으로 여러 개 시켜먹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현지인들이 많이 보였다. 가족 단위로 와서 식사하는 분위기였다. 만약에 다시 온다면 부모님과 함께 올 것 같다. 식당도 넓고, 깨끗하고, 직원들도 친절하고, 합석도 안 해도 되니 가족 식사를 하기에 괜찮은 것 같다. 음식도 엄청나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큰 호불호 없이 다들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물론 내 돈 내고 다시 갈 생각은 없다.
식사를 마친 후 2층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 낮잠을 잤다.
호텔에서 푹 쉰 후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트램을 타고 갔는데 퇴근 시간과 겹쳤는지 사람들이 많았다. 친구들은 2층, 나는 1층에 서서 갔는데 창문이 열려있어 바람도 솔솔 불고 즐거웠다. 버스는 앞으로 타고 탈 때 옥토퍼스 카드를 찍는데, 트램은 정반대로 뒤로 타고 내릴 때 카드를 찍는 것도 신기했다.
트램에서 내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걸어가다 센트럴 마켓을 발견했다. 들어가 보니 각양각색의 기념품 가게, 까페, 음식점 등이 있었고 홍콩에서 인기가 많은 에그 와플을 사먹었다. 모양이 재밌어서 먹어봤는데, 그냥 땅콩과자 맛이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정말 길었다. 길긴 긴데,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가고 하나의 에스컬레이터가 쭉 이어진다기 보다는 여러 엘리베이터가 이어지는 느낌이라 잠깐 탔다 내리고를 반복했다. 그래도 올라가면서 바로 앞에 있는 건물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홍콩 특유의 대나무 비계도 볼 수 있고, 여러 식당, 까페, 술집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제일 인기 많은 곳은 베이크하우스 같았는데, 우리 호텔 앞에 있는 베이크하우스와 달리 여기는 진짜 줄이 길었다. 우리는 베이크하우스 말고 Vission Bakery라는 곳에서 Matcha Mochi Danish를 사먹었는데 빵 밑에 모찌가 깔려있어서 쫀득쫀득하고 정말 맛있었다. 홍콩에서 먹은 디저트 중 제일 맛있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한 방향으로만 운행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올라가면 걸어내려오기 힘들 것 같아 적당한 지점에서 내렸다. 분명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는 해가 아직 떠있었는데, 내려올 때 쯤 되니 어둑어둑 해졌다. 딱히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배가 고플 때까지 정처없이 어슬렁거렸다.
저녁은 훠거를 먹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3일차 쯤 홍콩 음식이 물려서 얼큰하고 매운 음식을 찾는다는데, 우리는 2일차부터 매운 음식을 찾아나섰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고, 친구가 미리 구글 맵스로 예약을 했다.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아무 문제 없었다.

많은 중국 식당들이 그렇듯 여기도 QR 코드를 찍어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다행히 영어 메뉴도 있었고 익숙한 요리/재료들이어서 왕창 시켰다. 백탕과 홍탕을 시켰는데 분명 Mild한 맵기를 택했는데도 홍탕은 엄청 매웠다. 어떤 친절한 종업원 분이 번역기까지 써가면서 야채는 홍탕에 넣으면 매운 기름을 다 빨아들여서 백탕에만 넣어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근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홍탕에 배추를 왕창 넣고 “김치다 김치” 하면서 먹었는데 너무 매워서 두유를 시켜야만 했다. 근데 두유가 너무 달고 맛있어서 그것도 나름대로 재밌는 경험이었다.
Uncle Fong 훠궈집에서 저녁을 배터지게 먹고나서야 고국의 음식에 대한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홍콩 온지 24시간됨). 샤브샤브 집에서 파는 죽 같은 건 없나 하고 메뉴를 뒤져봤지만 그런 건 없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 후 하루를 마무리 하기 위해 술집을 찾아나섰다. 마침 근처에 가보고 싶었던 재즈 바 Iron Fairies가 있어 거기로 향했다.


우리는 9시 쯤 들어갔고 그때는 아직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커다란 테이블 하나를 우리가 전부 차지했다. Iron Fairies 천장에는 10,000개의 요정 장식이 달려있고, 테이블에도 요정 모양 장식품이 놓여 있었다. 친구들과 칵테일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칵테일을 한 잔씩 더 시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다보니 10시 쯤 되었다. 그새 사람들이 가득 찼고, 친구들과 대화하려면 목소리를 높여서 얘기해야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한 직원이 계산서를 들이밀더니 다른 직원들은 일어서라고 하며 우리 의자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10시부터는 라이브 공연을 시작해서 다들 일어서서 놀 수 있게 미리 계산도 하고, 의자도 빼주는 것이었다.
라이브 공연을 하는 바는 처음 가본 거였는데, 너무 멋있었다. 무대 위 모두가 흥이 넘치고, 노래와 연주를 엄청 잘해서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KATSEYE의 Gabriela를 부를 때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고 바에 있는 모두가 춤을 췄다. 내 친구는 너무 신난 나머지 춤추며 천장에 있는 장식품을 손으로 계속 쳤다가 직원한테 혼났다. 부끄러웠다.
즐거운 밤이었다.
몇 시에 Iron Fairies에서 나왔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 트램이 돌아다니는 시간이었다. 일요일 밤인데도 야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홍콩 직장인들을 보니 귀국하면 출근해서 해야 할 것들이 생각이 났지만, 금새 잊고 홍콩 밤거리를 구경하며 호텔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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