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행 - 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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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어느 주말 아침 눈을 떠보니 군대 동기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그것도 새벽 2시에 보낸 카톡이.
오랜만에 온 연락이라 무슨 일일까 싶어 바로 연락해 보았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최근 마음 아픈 일을 겪었단다. “ㅋ“을 섞어 표현하긴 했지만,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을 법한 일이었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어 보니 지금은 부산, 정확히는 기장에 살고 있다더라.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고향인 인천에 살던 녀석이 기장에 지낸 지 3년째라고 했다. 정말 요즘 시간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마침, 여름휴가를 떠나고 싶기도 했고, 친구 이야기라도 들어주며 위로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부산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8월 28일 금요일, 12시쯤 퇴근 후 회사 앞 버거킹에서 식사하고, 수서역으로 향했다. 13시 55분 기차였는데 내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 13시쯤 수서역에 도착했다. 역사 내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벤치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혼자 이렇게 여행을 떠나는 건 처음이었다. 이전에도 혼자 비행기를 탄다든지, 목적지에 먼저 도착해 일행을 기다린다든지 하는 경험은 있었지만, 아예 여행 준비 단계부터 오로지 나만을 위해 계획하고 떠난 여행은 해본 적이 없다. 물론 가서 친구를 만나긴 하지만, 그래도 여행 내내 같이 있는 건 아니니 내 인생 첫 혼자 떠난 여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 구경도 하고, 킨들로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기차 출발 시간이 다가왔다. 수서역에서 부산역까지 가는 SRT는 약 2시간 반 정도 걸렸다. 내 앞자리에 앉은 꼬마가 내가 어릴 때 제일 좋아했던 퍼시 잭슨 시리즈 책(Mark of Athena)을 읽고 있는 걸 보고 너무 반가워서 말을 걸고 싶었지만, 30대 아저씨가 꼬마에게 말을 거는 건 너무나도 꼴불견일 것 같았다. 대신, 나도 다음에 알라딘에 가면 오랜만에 퍼시 잭슨 시리즈 책을 사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기차가 부산역에 도착할 때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묵을 호텔은 부산역 바로 앞에 있어,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체크인 후 침대에 누워 잠시 쉬고 있으니, 친구가 퇴근 후 호텔로 왔다. 친구를 만나 서면역 근처에 있는 횟집으로 향했다.
부산에 오면 대선 소주를 꼭 먹어보고 싶어 시켰는데, 기대와는 달리 상당히 맛이 없었다. 대선을 시키자고 할 때 친구가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고 알아채야 했는데. 참이슬이나 처음처럼에 물을 탄 것 같은 맛이었다.
그래도 회와 술을 먹으니, 오랜만에 본 친구와 어색함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친구는 회사 연수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기장으로 왔고, 여기서 돈도 잘 벌고, 차도 있고, 사택도 있어 잘 지내는 듯했다.
아마 이제 직장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결혼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일이 좀 꼬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동안 친구가 마음을 잘 추슬렀기 때문일까. 내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친구가 잘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이 친구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런 일이 생각보다 종종 있고, 차라리 결혼 후에 알게 되는 것보다는 결혼 전에 알게 되는 게 훨씬 낫다는 것뿐이었다. 조상님들이 도와주신 것 같으니 이번 명절 때 비싼 술을 들고 가 음복하라고 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광안리로 향했다. 약 11년 전, 대학생 때 친구들과 내일로를 타고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도 이번처럼 부산에서 하루만 묵었는데, 그때는 워낙 막무가내로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여행하던 때라, 기껏 부산까지 와서는 광안리도 안 가고 숙소에서 당시 방영하던 “너목보”라는 예능을 보다가 노래방 가서 놀다 온 기억밖에 없다.
비가 와서 그런지 금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광안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소화도 시키고, 경치 구경도 할 겸 광안리 해변을 따라 걸었다. 사람도 없고, 밤에 봐서 그런지 특별할 건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바다라 그런지,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가 좋더라.
사실 오늘 회를 먹기로 했을 때, 혹시나 부산까지 와서 체할까봐 걱정했었다. 몇 년 전부터 체력이 떨어지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 회사에 다닐 때는 반기에 한 번씩 체했는데, 지금은 거의 분기에 한 번씩 체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냥 늙었나보다 했는데, 사실 내가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건강검진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나오니, 아마도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닐까 싶다.
최근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나에게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라고 조언해 주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한 친구도 내가 예민한 편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주위에서 그렇게 말해주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언제쯤부터였을까. 어릴 때도 이런 성격이었을까. 아니면 어른이 되면서 이런 성격이 된 걸까. 왠지 아주 어릴 때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고, 고등학교 2~3학년 때부터 조금씩 변한 것 같기도 하다. 아마 그때쯤부터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이런 성격에도 장단점은 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어릴 때보다 개성도 생기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등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다만, 이런 것들을 이루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며 여러 번 실패도 겪어야 하는 법인데 내가 그런 과정에서 오는 불안감과 조급함을 잘 다스리지 못했나 보다.
광안리 해변에 서서 파도 소리를 듣다 보니, 문득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다니던 기억이 났다. 성당에서는 미사 중반부 쯤에 신자들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신자들이 서로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하는데, 나는 그 말의 뜻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그 말의 의미가 조금 와닿는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서로에게 마음의 평화를 빌어주는, 참 좋은 인사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친구, 그리고 내 주변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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